검색결과
  • 세계사 유례없는 49년 권좌/김일성 출생에서 사망까지

    ◎한국민엔 용서받지 못할 전범 낙인/6·25실패후 반대파 숙청 재기성공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사망했다. 김일성처럼 극단적인 평가속에 살다간 인물도 드물 것이다.그는 북한주민에게「위대

    중앙일보

    1994.07.09 00:00

  • “북한 김정일 출생지 조작”/북경거주 유모 이재덕씨 첫 증언

    ◎“백두산 태생”은 거짓/원래 소 하바로프스크서 출생 【북경=특별취재반】 북한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났다는 북한의 주장과 달리 42년 2월16일 소련의 하바로프스크 인근 88독립

    중앙일보

    1991.10.04 00:00

  • 소정치장교/입북전 김일성 「면접」(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:3)

    ◎소의 선택과정/당시 88여단 대대장… 베리아 추천설도/김용범·최용건·김책·강건도 “지도자감” 주목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45년 8월하순 하바로프스크에 있던 25군정치장교 메크레르

    중앙일보

    1991.08.19 00:00

  • 이승만 냉전으로 ″어부지리〃

    일제말기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을 계속했던 4대세력은 과연 무엇을 이루었는가. 당시 4대세력 「김구와 임시정부」「무정과 화북조선독립동맹」「이승만과 구미위원부」「김일성과 항일유격대(빨찌

    중앙일보

    1991.08.15 00:00

  • 박영석 국사편찬위원장의 연변기행 선구자의 발자취 따라(10)|항일 노 전사 "죽기 전 고향 가 봤으면…"

   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다고도 할 l6박 17일의 중국여행도 이제 서서히 그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. 서울을 출발하면서 욕심 것 세웠던 모든 계획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. 물론

    중앙일보

    1989.10.18 00:00

  • 총한방안쏴본「장군」

    당시 소련군사령부는 누구든간에 과거 공작활동을 벌였던 지역 혹은 고향지방의 위수사령부 부책임자로 부임시켜 일을 맡기라는 지시를 내렸다. 이제까지의 사실들을 제쳐놓고 김일성과 그 일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3.27 00:00

  • 그때싹튼 반소성향

    어쨌든 이시기에 소련에 들어간 사람들은 처음에는 오케안스크에서 휴양과 억류를 겸한 생활을 했고 그후에는 극동군구사령부(사령관「아파나센코」대장)직속의 정찰국(국장「조르킨」 소장) 관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3.26 00:00

  • 「조국광복회」 팔아

    이런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천재적이었다고 북한 어용학자·문필가들이 찬양하는 것이 이른바 「보천보 전투」다. 보천보전투는 김일성을 일약 동북합일전선의 명장·스타(일성)로만들었고, 그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3.25 00:00

  • 한때 책자 모두회수

    김일성의 공로를 인공적으로 과장하고 그 경력을 위조, 미화시켰던 이책도 지금에 이르리서는 아무 쓸모가 없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신격화의 증거물이 되고 말았다. 저자는 또 김

    중앙일보

    1982.03.25 00:00

  • (53)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

    우리는 앞에서 옛 「김일성 장군」에 관한 전설 중 단천 출신설과 일본육사 출신설을 길잡이로 하여 그 실존 여부를 추적했던 바 단천 출신으로는 의병장 김일성 장군이 있었고 일본육사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9.03 00:00

  • (48)제자=김홍일|김성주의 폭력제일주의

    김성주가 오늘의 최고·유일 지위를 확보하는데 써온 지배수단이 「폭력 제1주의」이다. 숙청을 통해 비판자와 도전자를 철저히 제거한 것이다. 김성주의 이런 지배수법은 공비의 근성에서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8.08 00:00

  • (45)|그 전설·실존·도명을 밝힌다|입소 이후의 2대 김일성

    야부 토벌대에서 끝까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을 추적했던 장도공작대장은 그 김일성의 얼굴도 경력도 잘 알면서 그 김일성과 북한의 김성주가 동일인물인줄 생각하고 있었다. 그는 말하기를『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7.29 00:00

  • (43)2대 김일성의 정체(상)|이명영 집필(성대교수 정치학)

    진천보를 습격했던 동북 항일연군 제6사장 김일성이 죽은 뒤를 이어 그 이름을 승명했던 2대 김일성(연군 제1노군 제2방면군장은 1940년12월에 일만 군경에 쫓겨 소련으로 도주하고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7.23 00:00

  • (42)항일연군의 최후|이명영(성대교수 정치학)

    항일연군 제1노군에 대한 섬멸작전인 동남삼성치안 숙정 공작은 그때까지의 일만 군경의「토벌」작전 중에서는 가장 본격적이고도 대규모의 작전이었다. l939년10월에 총공격이 시작되자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7.20 00:00

  • (39)6사장 김일성의 죽음(하)|이명영 집필(성대교수 정치학)

    항일연군 6사장 김일성의 죽음은 그 시체를 검증했던 만군장교 팔목춘웅씨의 증언과 만군기관지『철심』의 기록으로 확인됐다. 제6사장 김일성의 죽음은 근의 대를 이은 또 하나의 김일성의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7.10 00:00

  • (38)제자=김홍일-6사장 김일성의 죽음

    보천보 습격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항일연군 제6사장 김일성이 북한의 김성주와는 딴사람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. 혜산사건의 취조 책임자였던 시원경부의 말처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7.08 00:00

  • (36)|그 전설·실존·도명을 밝힌다|6사장 김일성에 관한 소문들|이명영 집필 (성대 교수 정치학)

    제6사 (사장 김일성) 부대의 보천보 습격은 제6사가 장백현 일대와 국경 지대의 국내에서 벌인 물자 조달 작전 (강탈 사건) 치고는 제일 규모가 컸던 사건이다. 또 그것은 만주에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7.03 00:00

  • (35) |그 전설·실존·도명을 밝힌다|보천보 사건|이명영 집필 (성대 교수 정치학)

    1937년6월4일 밤 10시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장 김일성 (당시 36세·함남 출신·「모스크바」 공산 대학을 나온 후 적군에 있다가 만주의 항일 연군에 파견됨·김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7.01 00:00

  • 이 제6사장 김일성의 이름이 일만 측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35년말께부터 이며 일제의 함남국경지방 경찰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제6사가 장백현 오지에 근거지를 잡은 1936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6.29 00:00

  • (21)|제3장 동북인민혁명군 중공 당 유격대 속의 한인|이명영 집필

    1938년 가을, 조선혁명군의 마지막으로 남은 대원들이 합류했던 동북항일연군은 중공 당 만주성위 예하 중한공산주의자들의 무장세력으로서 소련의 절대적인 인적·물적 지원덕택에 반만 항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5.20 00:00

  • (19)|그 전설·실존·오명을 밝힌다|조선 혁명군의 최후|이명영 집필

    조선혁명군의 숨통을 틀어막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던 일만 군경은 몇 차례에 걸쳐 대 포위공격작전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었던 원인에 대해 대략 세 가지의 분

    중앙일보

    1974.05.13 00:00